로드FC 문제훈 "태권도 내려놨더니, 태권도 얻었다"

알 수 없는 사용자 / 2015. 5. 17. 18:35



 "글쎄… 앤더슨 실바가 종합격투기에서 태권도 기술을 잘 쓴다고 해도, 밥 먹고 태권도만 하던 선수들과 비교할 수 없다. 완전히 다른 세계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브라질 태권도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하겠다고 선언한 실바에 대해 로드FC 밴텀급 타이틀 도전자 문제훈(31,옥타곤멀티짐)은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태권도 선수로 활동해온 그는 두 종목의 차이가 꽤 크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1회전에서 탈락할 것 같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태권도 국가대표가 되는 것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 힘들다. 특히 종주국 대한민국에서 태극마크를 다는 건 상위 1%의 선수들에게만 가능한, 꿈 같은 일이다.


오는 2일 '로드FC 23' 메인이벤트에서 챔피언 이윤준(26,압구정짐)에게 도전하는 문제훈은 인터뷰에서 "초등학교 때 도장에서 태권도를 배운 시절부터 부흥중학교, 관악정보산업고등학교 선수부에서 훈련할 때까지 목표는 오로지 태극마크였다. 태권도를 아주 못하는 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원하는 대학교에 진학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선수생활을 정리해야 겠다고 마음 먹었다. 대학교는 나와야 한다는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이 아니었다면 전주우석대학교에 진학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태권도 선수 문제훈의 문제점은 '너무, 너무, 너무' 공격적이었다는 것이다. 감독과 코치들이 '제훈아, 다른 애들은 공격을 너무 안 해서 탈인데, 넌 제발 공격 좀 자제해라. 상대를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고 야단칠 정도였다고.


그는 "지금 생각해보면 난 태권도와는 안 맞는 성향이었던 것 같다. 포인트제에선 점수 관리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10초 동안 스텝만 밟으면서 상대가 들어오는 걸 기다리지 못했다. 점수에서 앞서고 있는데도 선공을 펼치다가 받아차기에 당해 패배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무모했고 무식했다"며 웃었다.


문제훈은 원래 식당을 차리고 싶어 했다. 해병대에 입대할 때 태권도 선수로서의 꿈은 완전히 접었다. 운동은 더 이상 하지 않기로 결심했었다. 그러나 우연히 TV에서 본 고미 타카노리의 경기에 마음이 흔들렸다. 프라이드에서 경량급 선수도 활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종합격투기 파이터가 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혔다. 2007년 해병대를 전역하고 곧장 종합격투기 훈련을 시작했다. '5년 안에 프로에 데뷔해 프라이드에 진출하겠다'가 처음 세운 목표였다.


"격투기를 해야 나중에 후회를 안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면 하지 못할 일이니까. 5년 후에 프로에 데뷔하겠다고 생각하고 훈련을 시작한 곳이 영등포 정심관이었다. 대학교는 졸업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권유에 2008년 다시 전주로 내려갔고, 퍼스트짐에서 훈련했다. 2009년 프로에 데뷔했고 2011년 로드FC에 입성했다."


로드FC에서 6승 4패의 전적으로 밴텀급 강자로 자리 잡은 문제훈은 오는 2일, 데뷔 후 처음으로 타이틀전에 나선다. 태권도 시절에도 최고의 성적은 경기도 대회 2위였다. 생애 처음 가장 높은 자리에 앉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6연승의 상승세인 챔피언을 상대할 무기는 전후좌우 변화무쌍한 스텝과 전광석화 같은 빠른 발차기다. 이윤준 역시 "객관적으로 스피드에선 문제훈이 우위에 있다. 스텝과 킥이 너무 좋다"고 인정한다.


종합격투기 데뷔 초기에 문제훈은 펀치를 앞세운 전진 압박 타격전을 즐겼다. 누가 귀띔해주지 않으면, 10년 넘게 태권도 선수로 활약했다는 사실을 절대 알아채지 못할 수준이었다. "사실 태권도를 완전히 내려놓자는 생각으로 이 운동을 시작했다. 주짓수도 그래서 더 열심히 했다. 서서만 싸우다가 누워서 뭔가 해보려니 답답할 때가 많았다. 톱포지션의 상대에게 눌려있을 땐 미칠 지경이었다. 하지만 주짓수의 체계를 알아가면서 점점 재미를 느꼈다. 지금은 보라 띠가 됐다"며 "발차기는 의식적으로 하지 않았다. 가드를 바짝 올리고 펀치 연습에 충실했다. 자연스럽게 펀치를 앞세운 타격전을 즐기게 됐고 펀치 KO승에 중독돼갔다"고 밝혔다.


태권도 시절에 문제로 지적받던 멈추지 못하는 공격성은 종합격투기에선 장점이 됐다. 그러나 문제훈은 곧 진화해야할 시기가 다가왔음을 직감했다. 단조로운 패턴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봤다. 2013년 4월 이길우의 펀치에 실신 KO패를 당한 이후, '봉인'해뒀던 태권도 발차기를 꺼내기로 결심했다. 펀치 타격에 익숙해졌으니, 이제는 발차기를 종합격투기에 맞게 접목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문제훈은 1년의 공백을 가진 뒤, 지난해 4월 티아고 실바 전에서 태권도 돌려차기식 로킥을 주무기로 썼다. 3라운드 그라운드에서 암트라이앵글초크를 당해 역전패했지만, 스타일의 변화는 확실히 눈에 띄었다. 그리고 지난해 8월 케이지 위에서 태권도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상대 마르코스 비나가 쉽게 따라오지 못할 만한 활발한 움직임으로 주도권을 잡더니 미들킥으로 1라운드 2분 30초 KO승을 거뒀다. 지난해 12월 김민우 전에선 태권도 기술인 나래차기까지 선보였다. 문제훈은 이 경기에서 난적 김민우에 판정승을 따냈다.


"태권도를 본격적으로 섞기 시작한 것은 마르코스 비나 전과 김민우 전이었다. 킥 순발력은 살아있었다. 태권도를 내려놓고 펀치 타격에 집중해 종합격투기 파이터로 진화할 수 있었다. 이젠 다시 몸에 익어있는 태권도 기술을 섞어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문제훈은 "태권도 스텝으로 템포를 조절하게 되면서 체력도 효율적으로 쓰게 됐다. 상대를 흔들 때 흔들고, 들어갔다가 빠지면서 흐름을 주도하니 전진 일변도의 타격 스타일을 구사할 때보다 체력 소모가 적다. 지금까지는 아주 잘 맞아 들어가고 있다"며 웃었다.


태권도를 배운 종합격투기 파이터들은 여럿이 있다. 앤더슨 실바, 앤서니 페티스가 대표적. 그러나 문제훈은 이들과 다르게 태권도 스텝까지 활용해 차별화된 스타일을 만들어가고 있다. "여전히 계속 실험 중이다. 이윤준 전에서 더 완성된 스타일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나래차기에 뒤차기, 뒤돌려차기(뒤후리기·회축), 돌개차기(턴차기) 등의 태권도 발차기를 종합격투기에서 쓸 수 있다고 밝힌 문제훈은 '페티스처럼 철망을 딛고 차는 매트릭스 킥은 가능한가'는 물음에 "그것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웃으며 답했다.


문제훈은 승리에 대한 갈망이 어느 때보다 강하다. 그래서 챔피언 이윤준을 향한 도발도 서슴지 않는다. 신경전에서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윤준이 6대 4로 자신이 유리하다고 하자, 그는 "10대 0으로 내가 유리하다"고 맞섰다. 이윤준이 김수철-이길우-문제훈 순으로 랭킹을 매기자, 그는 "5월 3일 랭킹에는 내가 챔피언, 이윤준이 3위로 떨어질 것"이라고 반격했다.


그는 그라운드 공방전에 대한 준비도 돼있다고 자신했다. "모두들 내 그라운드 실력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 실제로 겪어보면 알게 될 것"이라며 '그라운드에 두 번 내려가면 한 번은 끝낼 수 있다'는 이윤준의 도발에 맞서 으르렁거렸다.


▲태권도 경기에서 조절이 되지 않았던 특유의 공격성 ▲파이터가 되기 위해 주먹만 쓰며 쌓은 타격전 경험 ▲15년 동안 갈고닦아 언제든 꺼낼 쓸 수 있었던 태권도 기술의 장착. 문제훈은 20년 동안 땀 흘리면서 찾은 자신의 스타일을 타이틀전에서 다 쏟아낼 계획이다.


"태권도 선수가 종합격투기에 적응하기 위해서 어떤 과정을 밟아야 하는지 혼자서 실험하며 체득하고 있다"는 문제훈은 타 종목에서 종합격투기로 전향하는 선수들이 꼭 필요한 것은 '인내'라고 조언했다. 익숙한 것과 거리를 두는 과정을 참고 견뎌야 종합격투기 파이터가 될 수 있고, 비로소 자신의 파이팅 스타일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는 2일, 문제훈은 그 인내의 결과를 보여주려고 한다.


이교덕 기자 doc2ky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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