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헨조 그레이시 코리아’ 나건 “두마리 토끼 보여”

비회원 / 2015. 5. 17. 11:58


10여년 전, 주짓수가 아직은 낯선 스포츠인 시절이었다. 학교 특활시간에 주짓수를 가르치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기해서 찾아간 적이 있다. 자초지종은 이랬다. 책과 미디어를 통해 주짓수를 접한 친구가 제대로 주짓수를 배워보고자 하는 마음에 주짓수 체육관에 연락을 한 것이 시작이었다. 당시 ‘스쿨 오브 주짓수’라고 불렀던 이 활동을 맡아서 했던 유술가는 분당 건주짓수의 나건 관장이다. 어른이고 아이들이고 주짓수가 마냥 신기했던 그 시절,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주짓수를 했던 그의 모습은 여전히 내 기억속에 남아 있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났다. ‘스쿨 오브 주짓수’ 활동을 열심히 했던 대학생 청년 나건은 결혼하여 아이의 아빠가 되었고, 한 체육관을 책임지는 관장이 되어 있었다. 다만 변치 않은 사실은 여전히 주짓수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운동을 좋아했던 키 작은 청년, 주짓수에 눈뜨다


Q : 어떻게 운동을 시작하게 됐나? 원래부터 운동을 좋아했나?


A : 그렇다. 원래부터 투기를 좋아해서 유도, 킥복싱, 합기도 등을 수련했다. 운동을 좋아해 이것 저것 수련하긴 했지만, 어느 종목에도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Q : 흥미를 느끼지 못한 이유가 있나?


A : 한계를 느꼈던 것 같다. 작은 체격이 걸림돌이었다. 운동을 열심히 해도 일정 수준이 이르면 매번 한계를 느꼈다.


Q : 주짓수는 어떻게 알게 되었나? 당시엔 매우 생소한 운동이었을텐데.


A :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어떤 영상을 하나 보게 됐다. 돌이켜보면 그때 봤던 영상은 아마 그레이시 주짓수 관련 영상이었던 것 같다. 영상을 보는 내내 신기했다. 여러 가지 운동을 했지만 그 영상에 나오는 기술은 매우 신기했다. 뭔가 흥미로웠다. 나중에 그것이 주짓수라는 걸 알게 됐고 그때부터 주짓수를 할 수 있는 곳이 없을까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Q : 알기론 당시에 격투기를 수련하는 모임이 몇몇 있었다. 이를 테면 암록도 있었고.


A : 아, 암록은 아니었다. 논현동 어느 체육관에서 주짓수를 수련하는 모임을 찾아냈다. 이희성 관장님이 주도하여 일주일에 한 두 번씩 모여서 주짓수를 수련하는 곳이었다. 주짓수를 배우고 싶었고 집도 가까워서 바로 찾아갔다.


Q : 당시 분위기는 어땠나? 아직 한국에 주짓수라는 스포츠가 제대로 뿌리 내리지 않았던 상황이었는데.


A : 동호회 같은 느낌이었달까? 지금과 굳이 비교하자면 세미나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1일 회비를 받고 주짓수 기술을 수련하고 스파링하는 식으로 수업이 진행됐다. 처음 수업을 들었는데 분위기가 왠지 살벌했다. 배우러 오신 분들이 주짓수 기술을 배우러 왔다기 보다는 주짓수라는 종목을 시험하려는 느낌이었다. 뭔가 싸우려고 온 분들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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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처음 경험해본 주짓수였을텐데, 어땠나?


A : 주짓수에 대해 제대로 된 이해없이 생애 처음 스파링을 해봤다. 아, 정말 호되게 당했다. 아무것도 모르던 상태였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Q : 보통 어떤 종목에 호되게 당하면 두 가지 결과로 나뉜다. 도전을 하거나 포기 하거나.


A : 내 경우는 도전을 하는 쪽이었다. 수련하면 할수록 뭔가 매력이 느껴졌다. 아! 주짓수 매력을 느꼈던 일화가 하나 있었다. 함께 수련하던 고등학생이 있었다. 작고 왜소한 체격이었던 친구였는데, 그 친구 덩치 큰 외국인을 주짓수 기술로 제압하더라. 승부를 떠나서 작은 체구의 학생이 거구와 경기를 치른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내가 예전에 수련했던 운동에선 불가능한 것이었다. 이러한 것을 보게 되면서 주짓수라는 스포츠가 궁금하기 시작했다.


Q : 큰 흥미를 느꼈다면, 열심히 수련했겠다.


A : 주짓수라는 종목은 재미있었지만 아직 확 빠져들진 못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함께 수련하는 분들과 서먹서먹했고. 무엇보다 오고 가는 분들이 많아서 그런지 그 모임에 쉽게 정붙이기가 힘들었다.


Q : 본격적으로 주짓수에 빠지게 된 시기는 언제부턴가?


A : 서울대입구쪽에 이수용 관장님의 체육관을 다니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체육관이다보니 지속적으로 수련하는 분들이 많아서 인간적으로 친해졌다. 그러면서 주짓수가 더욱 더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주짓수에 빠진 청년, 학교에 주짓수를 전파하다


Q : 우리 둘의 인연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스쿨 오브 주짓수’다.


A : 벌써 10년 전이다. 아직 대학생이었던 시절이었고 주짓수를 수련한지 1년정도 됐을 무렵이었다. 이제 1년을 배운 내가 누구를 가르친다는 것이 어색할 무렵이었다.


Q : 당시 주짓수라는 스포츠가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어떻게 학교에서 주짓수를 가르치게 됐나?


A : 대왕중학교의 학생이 체육관 게시판을 통해 연락을 했다. 학교에서 주짓수를 가르쳐주면 안되겠냐고. 당시 이수용 관장님께 말씀드리니 네가 주짓수 수련을 오래했으니 맡아서 해보라 하여 출강하게 됐다. 당시에 주짓수에 한참 빠져있을 때라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재미있을 것 같았다. 배우고 싶다는 아이들의 의지도 귀여웠고.


Q : 출강을 하여 주짓수를 가르쳐보니 어떻던가? 아이들이 직접 불러서 왔으니 열의가 대단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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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신기하게 쳐다보며 따라하더라. 가르치는 나도 재미있었고 아이들도 집중하며 즐겁게 수련했다. 특별활동 담임선생님께서도 “아이들이 이렇게 집중하는 모습은 처음 본다”며 신기해 하셨다.


Q : 처음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나누어봤다. 어떻던가?


A : 누구를 지도해본 것은 처음이었다. 많이 부족했지만, 열심히 준비해서 가르쳤다. 뭐랄까,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고 나눈다는 것이 참 좋았다. 이때 처음 다른 누군가에게 주짓수를 가르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Q : 취재이후 ‘스쿨 오브 주짓수’는 어떻게 됐나?’ 궁금하다.


A : 6개월정도 진행되었다. 처음엔 단발성으로 진행될거라 생각했는데, 한 학기 정도 진행되었다는 것도 신기했다. ‘스쿨 오브 주짓수’이후 주짓수에 관심을 갖고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몇몇은 도장에 찾아오기도 했다. 아~ 그러고보니 그때 주짓수를 배웠던 친구들이 군대 갈 때가 되어서 연락을 하기도 했다.


더 넓은 주짓수의 세계로 가기 위해 미국으로


Q : 한국에서 꾸준히 주짓수를 수련하다가 돌연 미국으로 출국했다.


A : 블루벨트를 갓 받았던 시절이었다. 사실 블루벨트를 받기 전부터 이미 계획하긴 했다. 당시 한국엔 퍼플벨트는 고사하고 블루벨트도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좀 더 커다란 주짓수 세계를 경험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주짓수를 오래 수련한 사람, 혹은 원류에 가까운 사람을 찾아가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돈을 마련하고 미국으로 떠나게 됐다.


Q : 원래부터 미국을 계획하고 있었나? 브라질도 있고, 가까운 일본도 있는데.


A : 그레이시 가문의 주짓수를 경험하고 싶었다. 찾아보니 미국 서부에는 힉슨 그레이시(Rickson Gracie)가, 동부에는 헨조 그레이시(Renzo Gracie)가 있더라. 이 둘 가운데 하나를 고민했다. 미국을 떠나기 전에 잠시 일본에 가서 주짓수를 수련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만났던 일본 친구가 헨조 그레이시를 추천했다. 그래서 고민 끝에 헨조 그레이시 도장으로 떠났다.


Q : 미국의 헨조 그레이시 체육관, 가보니 어떻던가?


A : 마냥 신기했다. 동영상을 통해 봤던 사람이 수업을 하고 있더라. 일례로 내가 많이 갔던 오후 1시 타임은 존 다나허(John Danaher)라는 사람이 수업을 진행했다. 존 다나허는 조르주 생 피에르(Georges Saint-Pierre), 데미안 마이아(Demian Maia)와 같은 UFC 선수들의 그래플링 코치다. 다른 UFC 파이터들도 개인 레슨을 받으러 올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다.


게다가 그의 수업을 듣는 수련생 대부분이 블랙벨트였다는 것이다. 당시엔 블랙벨트를 보는 것 자체도 신기했는데, 이제 갓 블루벨트 받은 내가 그 사람들과 수업을 듣고 스파링을 한다는 것도 좋았다. 당시 한국에서 받을수 없었던 수준 높은 수업을 받으니 정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Q : 헨조 그레이시 체육관에서 수련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이야기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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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주짓수를 오래하면 강해진다는 것을 확인한 계기가 있었다. 체육관에 꾸준히 나오는 백인 아저씨가 한 분이 있었다. 몸도 마르고 정말 외소한 분이었다. 근데 그 분과 직접 스파링해보면 정말 잘하더라. 주짓수 대회 우승한 사람들까지 스파링으로 이기는 것을 보고 신기해서 직업이 뭐냐고 물어봤다. 원래 직업은 변호사고 주짓수가 좋아서 10년동안 수련했다고 하더라. 그 분을 보고 확신했다. 주짓수라는 운동을 오랫동안 성실하게 수련하면 신체적인 한계를 좀 뛰어 넘을 수 있겠다는 것을 느꼈다.


Q : 헨조 그레이시와의 에피소드는 없었나?


A : 헨조 그레이시를 자주 보진 못했지만, 종종 볼때마다 신기해했다. 한국이란 나라에서 주짓수를 배우기 위해 왔다는 것이 신기했나보다. 헨조 뿐만 아니라 다른 마스터들이나 수련생들도 나를 신기한 존재로 느꼈다.


잠시 동안의 방황, 다시 미국으로


Q : 미국에선 얼마나 더 있었나?


A : 2년 정도 있다가 돌아왔다. 경제적인 부분을 해결하기 힘들어 헨조 그레이시 체육관에서 보라띠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Q : 한국에 돌아와서 주짓수 수련을 이어갔나?


A : 남은 학업을 마치느라 바쁘긴 했지만 주짓수를 하기 위해 노력했다. 여러 가지 일로 바뻐서 집 근처가 아니면 주짓수를 수련할 수 없어서 근처 체육관을 빌려서 지인들과 더불어 수련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주짓수를 잠시 주짓수를 쉬게 됐다.


Q : 무슨 특별한 일이 있었나?


A : 20대 초반부터 꾸준히 주짓수만 해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다른 일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주짓수 말고 다른 것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나중에 나이들기 전에 여러 가지를 경험해보고 싶었다. 고시 공부도 해보고, 일반 회사에서도 일을 했다.


Q : 20대를 거의 함께 한 주짓수를 하지 못했는데, 힘들지 않았나?


A : 처음에는 좋았다. 여러 가지 경험을 한다는 것도 재미있었고, 회사에서 일을 하는 것도 내겐 색다른 경험이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주짓수 체육관에도 나가기도 했다. 근데 일을 하면 할수록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주짓수를 제대로 못하고 바쁜 회사일로 지인도 못 만나고. 뭔가 앞뒤가 바뀐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Q : 그래서 결국 일을 그만 두었나?


A : 맞다. 일을 그만두고 당시 가끔 다니고 있었던 압구정 존 프랭클 주짓수 체육관에서 사범생활을 시작했다. 그때 사범 생활을 하면서 브라운 벨트를 받았다. 그리고 1년 안되어서 분당 존 프랭클 주짓수 체육관에서 잠시 사범을 하다가 그만두고 미국행을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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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급거 미국행을 결심한 이유는?


A : 주짓수를 더 배우고 싶었다. 사범생활을 하면서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을 더욱 채우고 싶었다. 게다가 미국에 갈 수 있었던 시간은 지금밖에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Q : 미국 생활은 어땠나?


A : 3개월을 주짓수에 미쳐서 살았다. 아침 8시 첫 수업을 시작으로 11시에 있는 선수부 훈련에서 8분 10라운드 스파링을 했다. 선수부 훈련이 끝나고 1시 수업을 들은 후 쉬었다가 오후 5시에 마음 맞는 친구와 드릴(똑같은 기술을 반복하는 것)을 1시간 동안 했다. 그날 컨디션이 괜찮으면 7시 수업을 듣고 힘들다 싶으면 집에 돌아왔다. 3개월 동안 이런 패턴을 반복하며 살았다.


Q : 그렇게 수련했으면 시합 욕심도 났을 법 한데, 시합은 혹시 나가지 않았나?


A : 나갈 수 있었던 시합은 다 나갔다. 뉴욕 오픈에서 은메달을 땄다. 아! 문디알에도 나갔다. 문디알은 항상 꿈꿨던 대회였다. 좋은 성적을 거두진 못했지만 값진 경험을 할 수 있었다.


Q : 말 그대로 해외 시합에 나간 것이다. 느낀 점이 있다면?


A : 많이 부족했다는 점을 느꼈다. 내 기술이 부족했고, 내가 운동을 게을리 했다는 것을 반성했다. 한국에서 사범 생활을 하면서 내 운동을 덜 했던 것이 원인이었다. 물론 사범은 체육관도 경영하고 수련생을 지도해야하는 것도 중요하다. 적당히 균형을 잘 지켰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Q : 90일간의 미국 생활을 정리해본다면?


A : 원 없이 탭(Tap out, 주짓수에서 항복의 의미)치고 왔다. 3개월 동안 몇 년치 탭을 치고 왔달까? 내가 지금까지 했던 주짓수를 정리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헨조에게 블랙벨트를 받았다. 어느날 헨조가 수업을 멈추더니 많은 수련생 가운데 나를 불렀다. 그러더니 나에게 블랙벨트를 매어주었다. 내가 90일 동안 열심히 운동했던 모습, 시합에 출전하여 성과를 얻은 부분이 작용했던 것 같다.


"유술가와 지도자 사이서 균형 맞추고파”


Q : 90일간의 여정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다.


A : 한국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체육관을 차렸다. 미국에서 돌아오면 나와 함께 운동하고자 했던 수련생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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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체육관을 열었을 때 헨조 그레이시는 어떤 반응이 없었나?


A : 헨조 그레이시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당신 덕분에 한국에 와서 이렇게 체육관을 운영하고 있다고. 그랬더니 헨조가 자신의 SNS에 ‘한국의 헨조 그레이시 아카데미’라며 체육관을 소개해줬다. 참으로 고마웠다.


Q : 다시금 지도자가 됐다. 여전히 주짓수 수련도 병행하나?


A : 주짓수를 수련하는 사람이라는 마음은 여전하다. 내가 시합을 할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 나가고 있다. 작년 일본에서 ‘2013 IBJJF 아시안 오픈 대회’에 출전했다. 올해에도 문디알에 출전하고자 했으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출전하지 못했다.


Q : 두 개의 길을 걷는 다는 것, 쉽지 않은 일인데.


A : 힘이 될 때까지 시합에 나가고 싶다. 지도자와 주짓수 선수라는 두 개의 길을 걷는 것, 물론 쉽지 않다. 어떻게 균형을 잡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주짓수를 꾸준히 수련하는 나도 잃지 않고. 함께 운동하는 사람도 잃지 않는 것,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Q : 정말 쉽지 않은 일인데.


A : 행복하다. 내 밥벌이가 주짓수가 아니라 주짓수가 밥벌이가 되어서 좋다. 나는 좋아하는 주짓수를 열심히 한 것 뿐 인데 그것으로 인해 가정도 꾸려지고 생활도 가능하게 됐다. 나는 정말 운이 좋은 것 같다. 주변에서 도와주시는 분들도 많고. 돌이켜보면 감사드려야 할 분들이 많다. 주짓수를 가르쳐준 스승님, 선배 친구 동료들, 모두에게 감사드리고 싶다.


Q :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 해 달라.


A : 헨조 그레이시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주짓수 밖에 할 줄 모르기 때문에 주짓수만 열심히 했다. 지금 나의 성공은 주짓수 때문이다.”라고. 그는 뉴욕이란 대도시에서 20년 넘게 터전을 잡고 있다. 경제적으로 성공했고 명예 또한 높다.


나도 할 줄 아는 게 주짓수 밖에 없다. 나는 앞으로도 열심히 주짓수 수련하고 주짓수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 열심히 가르칠 것이다. 주짓수는 하면 할수록 행복하다. 내가 느끼는 이 행복을 함께 운동하는 분들께 전해드리고 싶다. 


정성욱 기자 mr.sungch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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