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삼성전자 과장 대신 주짓수 택한 한진우 관장

알 수 없는 사용자 / 2015. 5. 17. 12:40


자신이 좋아하는 것, 혹은 꿈을 위해 ‘안정’을 포기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안정을 포기한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위험요소에 스스로 노출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13년간 다니던 국내 굴지의 대기업 삼성전자를 뒤로 하고 주짓수에 뛰어든 사람이 있다. 보통 사람이라면 취미로만 그쳤을 주짓수가 인생의 전부로 다가왔다는 ‘런주짓수’ 한진우 관장. ‘안정’을 포기하고 ‘꿈’을 선택한 한진우 관장에게 주짓수를 선택하게 된 계기와 앞으로 펼쳐갈 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원래부터 운동을 좋아했는지. 주짓수를 알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원래는 주짓수보다 복싱을 먼저 접했다. 아마 그때가 2005년이었을 것이다. 복싱을 열심히 하던 어느날, 체육관에서 어떤 분과 스파링을 할 기회가 있었다. 가볍게 한 스파링에서 내가 승리했다. 내 상대였던 분이 링 아래로 내려가면서 ‘무규칙으로 하면 내가 이긴다’는 말씀을 했다. 그래서 사람들 다 나가고 아무도 없었을 때 그 분과 이른바 ‘무규칙’으로 스파링을 했는데 패배했다. 스탠딩에선 문제가 없었는데 누운 상태에서 바닥에 깔리니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마치 물에 빠졌던 심정이랄까? 당시로선 매우 신기했던 기술을 쓰기에 그것이 뭐냐고 물어보니 ‘주짓수’라고 하더라. 다음날 바로 수소문해서 주짓수를 배우러 갔다.



-2005년이라면 한국에 주짓수 체육관이 몇 개 없었을 시절이다.


▲맞다. 당시 주짓수연합회에 소속된 8개 체육관이 거의 다였을 것이다. 이래저래 수소문 해보니 내가 다니던 삼성전자 내에 주짓수 동아리가 있었다. 당시 주짓수 동아리 모임은 수원이었고 내가 일하는 곳은 강남이었다. 거리가 멀긴 했지만 주짓수가 좋아서 그런지 별로 힘들지 않았다. 


-주짓수의 어떤 부분에 끌렸나?


▲모든 것이 새로웠다. 암바(arm bar:팔가로누워꺾기)라는 기술 하나만 배워도 신기하고 놀랍고 재미있었다. 암바만 한두 달 해도 재미있었다. 당시로선 신기한 기술을 이용해 사람을 제압하는 것, 특히 사람에게 직접 타격을 가하지 않고 제압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계속 사내 주짓수 동아리에서 수련을 했나? 거리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6개월 정도 수원을 오고 가다가 좀더 가까운 곳을 찾았다. 마침 집 근처에 이승재 관장님이 운영하는 MARC 체육관이 있어서 거기를 다니기 시작했다. 여기서 2010년말까지 주짓수를 수련하여 퍼플벨트까지 승급을 했다. 그러다가 급작스럽게 해외발령을 받고 해외로 떠나게 됐다.


-해외로 떠났다니, 어느 지역으로 가게 됐나?


▲2010년 말에 독일로 발령이 나서 근무하게 됐다. 원래 독일에서 계속 근무할 예정이었으나 6개월정도 근무하다가 정식 근무처로 발령 나기 전에 회사 사정으로 사우디아라비아로 가게 됐다. 


-그렇게 주짓수를 좋아했는데 독일이나 사우디아라비아에선 주짓수를 수련했나?


▲물론이다. 독일에 가자마자 근처 주짓수 체육관을 찾아서 주짓수를 수련했다. 사우디로 근무지를 옮기고서도 주짓수를 수련했다.


-독일에서 주짓수 수련은 이해가 가는데 사우디에도 주짓수 인프라가 존재하나?


▲사우디에 일을 하러 온 해외 주재원들이 만든 주짓수 팀인 스파이더라는 팀이 있었다. 수소문 끝에 팀에 합류하고 수련하기 시작했다. 사우디 발령은 나로 하여금 주짓수와 더 가까워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사우디에 발령받았을 때 가족이 함께 힘든 조건이어서 혼자서 생활하게 됐다. 해외에서 혼자 발령 온 사람이 생활하기에 사우디는 즐길 것이 거의 없다. 술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고, 영화관도 없다. 공공장소에선 음악도 틀면 안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취미로 할 수 있는 것은 주짓수뿐이었다. 이러한 조건으로 인해 주짓수와 더욱 가까워졌다.


-사우디에서 주짓수은 수련은 어땠나? 


▲지금 돌이켜보면 태릉선수촌 같은 느낌이랄까?(웃음) 매일 오후 9시에 업무를 끝내고 바로 체육관으로 향해 12시까지 주짓수를 했다. 한국이나 다른 나라처럼 술을 먹을 수 없으니 의전이 없어서 높은 분들을 모실 때는 저녁식사만 먹고 끝이 난다. 완전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게다가 종교상의 이유로 돼지고기가 없다 보니 단백질양이 많은 소고기랑 양고기만 먹었다. 한국보다 주짓수를 수련하는 환경이 더 좋았달까? 계속 한국에서 주짓수를 수련했다면 단지 취미 생활로만 그쳤을 것인데, 사우디에서 주짓수를 열심히 수련하면서 주짓수에 대한 애착이 더욱 커졌다. 


-사우디에서 주짓수 수련하면서 재미있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해 달라.


▲사우디에서 주짓수를 수련하면서 사우디에서 개최하는 대회에 2011, 2012, 2013년 매년 세 차례 출전했다. 2011년 처음으로 출전한 대회 때 일이다. 당시 사우디 주짓수 대회에 동양인이 출전한 것은 내가 처음이었다. 첫 동양인 출전이다 보니 주변에서 경계가 심했다. 내가 가드 포지션으로만 가도 흠칫 놀래며 뒤로 물러서더라.(웃음)


처음 출전했던 주짓수 대회가 열린 체육관이 하늘이 뚫린 곳이었다. 내가 가드 플레이를 하다가 하늘을 봤는데 엄청나게 많은 별이 하늘에 떠 있더라. 순간 시합하면서 잠시 멍해졌던 기억이 있었다. 주짓수 시합을 하늘이 뚫린 체육관에 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경험이었다.


사우디는 건조해서 기온이 50~60도 되더라도 건조해서 그늘에만 있으면 시원하다. 한국처럼 습기가 없이 후끈후끈하기만 하다. 주짓수 체육관에서 처음 갔는데 사람들이 몸을 풀지 않더라. ‘이 사람들이 참 기본이 안 돼 있구나’라며 나 혼자 몸을 풀었다. 본격적으로 주짓수 수련을 시작하는데 금방 지처셔 쓰러졌다. 사람들이 왜 몸을 풀지 않는지 알겠더라.(웃음) 기후가 건조하고 따뜻하니까 운동하면서 몸이 풀리지 않아 다친 적이 없었다. 왜 주짓수 하는 사람들이 캘리포니아로 가는지 이해가 가더라. 올해 4년만에 한국에서 첫 겨울을 맞이 하는데, 너무 춥다.


-혹시 사우디에 있으면서 아부다비 주짓수는 경험할 기회는 없었나?


▲2012, 2013, 2014년 모두 직접 관전했다. 나는 사우디에서 아부다비 출전 선발전에 출전하여 모두 우승했는데 2012, 2013년에는 회사 사정으로 출전을 하진 못했다. 그나마 회사의 상관의 배려로 선발전에 출전했다. 아! 그러고 보니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사우디는 하루에 5번 기도를 해야 한다. 그 시간에는 상점, 체육관 등 모두 문을 닫아야 한다. 그래서 주짓수 대회도 오후 6시 기도를 마친 오후 9시부터 시작한다. 대회가 끝나면 새벽 3~4시가 된다. 졸다가 내 이름 부르면 일어나서 경기하고, 다시 꾸벅 꾸벅 조는 것을 반복했다. (웃음)


-직접 경험해본 사우디와 아부다비 주짓수, 어떤가?


▲아랍사람들이 기본적으로 몸 접촉을 싫어한다. 특히 얼굴에 상처를 주는 것은 모욕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복싱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최근 사우디에도 젊은 사람들 위주로 주짓수를 수련하는 인구가 늘고 있긴 하다. 그래도 역시나 사우디 주짓수 인구의 대부분은 해외 주재원으로 온 사람들이다. 사우디 2900만 가운데 900만, 1000만이 외국인이다. 주로 미국이나 유럽인들 가운데 주짓수를 수련하는 사람들이 팀을 결성해 수련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러 사람들이 섞여있다 보니 다국적으로 여러 체급의 사람들과 함께 주짓수를 수련할 수 있었다. 


아부다비의 주짓수 열기는 대단하다. 2014년 처음 아부다비 대회에 출전했는데 매트 위에 올라가니 핀조명을 비춰주더라. 이런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평정심을 잃을 정도다. 왕자 이름을 딴 스포츠 도시(자예드 스포츠 시티)가 있다. 그 안에 주짓수 전용 체육관인 FGB(퍼스트 걸프 뱅크) 아레나가 있다. 여기서 총 상금 6억원의 대회가 치러진다. 체육관에는 엄청나게 비싼 LED 전광판이 곳곳에 다 설치되어 있어서 객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 모두 경기를 쉽게 관람할 수 있게 해두었다. 


이러한 배경에는 아부다비 주짓수를 후원하는 사람이 셰이크 모하메드 빈 자예드 알 나얀이란 왕위 계승 서열 1위의 왕자가 있다. 이렇다보니 UAE의 국영기업들, 이를테면 UAE 방위청, 경찰청 등이 후원사로 나선다. 게다가 UAE의 300개 학교에서 체육과목 가운데 주짓수가 들어가 있다. 남자아이들뿐만 아니라 여자아이들도 차도르에 주짓수 도복을 입고 주짓수를 배운다. 국가적으로 주짓수라는 종목을 육성하는 것이 부러웠고 특히 아이들에게 주짓수를 가르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2014년 아부다비 대회 출전후 한국으로 돌아왔다.


▲사실 한국에 들어온 것은 집안 일과도 관련이 있었다. 3년간 가족과 떨어져 있다 보니 서로 그리움이 컸다. 이에 아내가 한국으로 빨리 들어오길 원했다. 임기를 마치지 않고 들어가면 회사에서 잘릴 수 있다고 하니 아내가 차라리 집에서 놀라고 하더라. 그래서 놀기는 뭣하고 뭐라도 돈을 벌어야하지 않겠나고 하니, 아내는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바로 주짓수 체육관을 열면 어떠냐고 물어봤다. 아내가 멈칫 하더니 시간을 달라고 하더라.


사실 결혼하고 나서 주짓수 때문에 조금 다툼이 있었다. 결혼하고 나서도 시간이 나면 나는 주짓수를 수련하러 갔다. 아내가 임신을 했을 때도 출산하여 몸조리 할 때도 주짓수 때문에 자리를 비우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지금도 그 부분에 대해 미안해 하고 있다. 이런 주짓수를 남편이 전문적으로 한다고 하니 아내가 고민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할 수도 있다. 아내는 3일 정도 고민하더니 체육관을 내라고 했다. 그리곤 물심양면으로 도와줬다. 체육관을 열고 고민이 많을 때도 아내는 항상 나에게 힘이 돼 주었다. 


-아무리 좋아하는 주짓수이지만 대기업에서 나온다는건 쉽지 않은 결정이다.


▲한국에 돌아오고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비추니 본사에선 계속 잡았다. 해외 근무경력이 있고, 상사가 인사고가를 높게 줘서 자동으로 진급할 상황이었다. 돈을 좀 더 벌어서 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사실 몇 년 더 근무할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운동과 업무를 병행하면 예전에 했던 운동량을 도저히 따라갈 자신이 없었다. 


사실 세월호 사건도 주짓수를 선택하게 된 하나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해외에서 그 사고를 보면서 느끼는 바가 많았다. 불의의 사고로 꿈도 펼쳐보지 못하고 하늘로 떠난 아이들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고, 한편으론 아등바등 회사생활 하다가 오늘, 내일 죽을 수도 있고, 하루를 살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사실 내가 주짓수를 접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냥 평범하게 회사생활을 쭉 했을 것이다. 그만큼 뭘 하고 싶었던 것이 없었다. 내가 퇴사한다고 하니 직장 선배들이 나를 말리러 많이 찾아왔다. 처음엔 말리러 왔던 분들이 나와 이야기하더니 마지막엔 ‘네가 부럽다’고 하더라. 그들이 나를 부러워한 것은 성공이고 뭐고를 떠나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열심히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좋아하고 원하던 주짓수 체육관을 오픈했다.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나?


▲내 꿈은 아들과 함께 주짓수를 하는 것이었다. 이 꿈 또한 주짓수 체육관을 열게 된 계기 중에 큰 부분을 차지한다. 요즘 주짓수가 활성화되면서 성인 주짓수 인구는 비약적으로 늘었으나 아이들 주짓수 수련 인구는 미약하다. 아들에게 주짓수를 가르치고 싶은데 딱히 가르칠 곳도 없고, 그렇다고 매일 집에서 드릴만 시킬수도 없고. 그래서 기획을 해본 것이 아빠와 함께 하는 주짓수다. 


유치원, 초등학생까지 할 수 있는 주짓수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있다. 주짓수 인프라가 넓어지고 있기 때문에 주짓수를 좋아하는 아빠들은 자식에게도 주짓수를 시키고 싶은 생각이 있을 것이다. 


-앞으로 장기적인 계획이 있다면.


▲주짓수라는 종목의 ‘파이’를 키우고 싶다. 앞서 주짓수 체육관을 열고 운영 해오신 1세대 주짓수 선배들을 생각하면 언제나 감사한 마음뿐이다. 그 분들 덕분에 나도 이렇게 체육관을 열 수 있게 됐고 한국 주짓수가 이렇게 발전하게 되었다. 이런 시점에서 한국 주짓수계가 더욱 발전하기 위해선 다양한 수익 모델을 생각해야 한다.


사실 나는 생활체육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엘리트 체육으로 시작한 분들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나만의 강점이 무엇인가 생각해봤더니 회사 생활에서 배운 비즈니스 감각이다. 주짓수계의 파이를 키우는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그 안에서 다양한 수익모델을 생각해보고 있고 앞으로 실행해 나갈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한진우 관장에게 주짓수란?


▲나에게 주짓수는 ‘인생’이다. 주짓수를 하다보면 좋은 포지션을 점유하여 서브미션을 시도할 때도 있지만 반대로 나쁜 포지션에서 서브미션을 당할 수도 있다. 인생과 똑같다. 좋은 날도 있고 어려운 날도 있다. 주짓수에 인생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는 듯 하다. 주짓수를 하면 겸허해진다. 인생을 배운다는 느낌이 든다. 


정성욱 기자 mr.sungch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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