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광이 권아솔에게 "실력 평가는 팬들의 몫"

비회원 / 2015. 5. 17. 13:20





점심시간, 교실 한 구석에서 그래플링 스파링이 펼쳐졌다. "안드레이 알롭스키의 경기 동영상을 우연히 보고 종합격투기의 매력에 푹 빠졌다"는 한 고등학생은 틈만 나면 친구들과 교실에서 뒹굴었다.


지난 7일 'TOP FC 5 심중투신(心中鬪神)'에서 조성원을 판정으로 꺾고 TOP FC 페더급 초대 챔피언에 오른 '크루세이더' 최영광(28, 노바MMA)의 13년 전 이야기. 그는 동영상을 보면서 익힌 기술을 교실에서 테스트해보는 괴짜 고교생이었다. 최영광은 인터뷰에서 "장난삼아 시작된 몸싸움이 서브미션 기술을 주고받는 스파링이 됐다. 나를 비롯해 몇몇 친구들은 꽤나 열정적이었다. 지나가던 선생님께서 진짜 싸우는 줄 알고 말릴 정도로 치열했다"고 회상했다.


파이터가 되고 싶다는 꿈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고교 1학년, 그를 자극한 건 라이벌의 존재였다. 현재 TOP FC 밴텀급에서 활약하고 있는 동창 남기영(28)은 최영광의 '교실 그래플링 리그' 호적수였다.


최영광은 "당시 인천엔 주짓수나 종합격투기를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곳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특공무술 체육관에서 몇 가지 관절기나 조르기를 배우고 있었다. 그런데 남기영의 그래플링 실력이 날로 좋아지는 것 아닌가. 내가 모르는 기술을 쓰기 시작했다. 너무 궁금해서 비결을 물어도 대답해주지 않더라. 뒤를 캐보니, 그라운드 그래플링을 가르치던 대호체육관을 친구들 몰래 다니고 있었다. 나도 그곳에서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남기영을 따라 바로 그 체육관에 등록했다"고 말했다.


지는 게 싫었던 교실 그래플러는 그렇게 파이터의 길로 들어섰다.


교실 그래플러→토홀드 신동→몸짱 군인아저씨→그라운드 앤 파운더


스피릿MC 아마리그 4연승을 거둔 최영광은 만 20살이 된 2006년 2월 '스피릿MC 인터리그3'을 통해 프로에 데뷔했다. 웰터급(-70kg/현 라이트급) 그랑프리 출전권을 놓고 토너먼트가 펼쳐진 그날, 최영광은 토홀드로 두 번의 승리를 거뒀다. 자연스럽게 '토홀드 신동'이라는 첫 번째 닉네임을 얻게 됐다.


"선수들이 하체관절기에 익숙하지 않은 시절이었다. 기습적으로 노린 토홀드가 두 번이나 정확하게 들어갔다. 상대들 발목에서 우두둑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부러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스파링에선 그런 적이 없었는데 프로 데뷔전이라 강하게 비틀었다. 어린 마음에 무서우면서도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물지 않은 당시 국내 종합격투기 수준이라고 해도 프로는 프로. 하체만 노리는 단조로운 공격패턴은 곧 독이 돼 돌아왔다. 게다가 최영광은 남의철, 강범찬, 김창현 등 경쟁자들의 체격과 힘에서 밀렸다. 옷을 입고도 계체를 통과하던 때였다. 최영광은 스피릿MC에서 4연패의 수렁에 빠졌다.


그래서 군 복무 시절, 일과가 끝나기만 하면 웨이트 트레이닝장으로 달려간 건지 모른다. "다른 친구들이 TV를 볼 때, 매일 두 시간씩 운동을 했다. 그때 몸이 많이 올라왔다. 근육으로 80kg를 만들었다. 누군가는 스테로이드를 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솔직히 기분 좋은 얘기다. 꾸준히 노력해서 만든 몸인데, 약을 써서 만든 몸으로 보인다고 하니 나한텐 칭찬으로 들린다"고 웃으며 말했다.


최영광은 제대 후 강화된 근력과 레슬링 실력을 앞세워 톱포지션에서 상대를 압박하는 '그라운드 앤 파운더'가 됐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홍콩의 LEGEND FC에서 주로 활동하며 승수를 쌓았다. 상승세를 타고 있던 터라 2013년 가을 LEGEND FC가 갑자기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듣고 상실감이 컸다.


"LEGEND FC 첫 경기에서 대회 오프닝매치를 뛰었다. 승리를 이어가니까 경기가 뒤로 배치되고 메인이벤트에 점점 가까워지더라. 한 계단씩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2013년 여름에 페더급 타이틀전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었다. 드디어 메인이벤트에 서보는 건가 생각했다. 그런데 레전드FC가 뜬금없이 폐업을 선언했다. 그것도 기사를 통해 알게 돼 무척 당황스러웠다."


"노바MMA 파이터는 두려움 없는 로봇이 된다"


'국제미아(?)'가 된 최영광, 다행히 또 다른 기회가 찾아왔다. LEGEND FC의 폐업은 최영광이 국내 복귀를 결심하고 TOP FC와 인연을 맺는 계기가 됐다.


최영광은 지난해 2월 TOP FC 첫 경기에 나섰다. 'TOP FC 내셔널리그 3'에서 맞붙게 된 상대는 전주 퍼스트짐의 한성화였다. 정찬성, 최두호, 김장용, 최무겸, 서두원, 권배용 등 유독 국제경쟁력이 강한 우리나라 페더급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실히 알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의욕이 앞섰던 것일까? 최영광은 2라운드 29초 만에 한성화의 하이킥에 이은 후속 타격에 무너졌다. 국내선수에게 패한 건 2007년 4월 스피릿MC 김창현 전 이후 약 8년만이었다. 3개월 후인 5월 'TOP FC 2'에선 윤민욱의 펀치를 맞고 휘청거렸다. 버팅에 최영광의 이마가 찢어져 경기는 무효 처리됐지만, 명예회복을 노린 그의 입장에선 실망스러운 결과였다.


고개 숙인 최영광을 일으켜 세운 건 소속팀 '노바MMA'였다. 노바MMA는 백형욱 감독의 지도 아래 김재영, 김은수, 최영광 등이 훈련하는 인천지역의 대표적인 종합격투기팀이다. 구성원 대부분이 기독교인이라는 것도 다른 팀은 가지고 있지 않은 특색이다. 종교적 신념까지 섞여 감독과 선수는 끈끈한 신뢰관계로 묶여있다.


최영광은 "감독님은 자신의 사업을 하면서 일주일에 2~3번 팀 훈련을 지휘한다. 너무 열정적이라 선수들이 힘겨워할 때도 있다. 8~10시간 동안 식사도 거른 채 훈련이 이어질 때가 많았다. 새벽 2시30분에 훈련이 끝난 적도 있다"면서 웃었다. "솔직히 버거울 때도 있다. 그러나 넘치는 에너지로 끌어주니 선수들이 안 따를 수 없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실력이 향상된다"고 말했다.


백형욱 감독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는 최영광의 '로봇 발언'에 완전히 녹아있었다. "우리는 케이지 위에서 감독님의 지시를 100% 믿고 따른다. 노바MMA 파이터는 로봇이 된다. 인파이팅을 주문하면 두려움 없이 상대와 치고받으러 들어간다. 노바MMA의 승리는 선수와 세컨드가 완전히 하나로 묶였을 때 나온다"고 했다.


출전선수들의 부상으로 와일드카드로 페더급 토너먼트 준결승에 들어간 최영광은 지난해 11월 'TOP FC 4'에서 왼팔로 안면 가드를 단단히 잠근 후 오른손 펀치로 받아치는 전략으로 3연속 KO승의 김동규에게 첫 번째 패배를 안겨줬다. TOP FC에서 거둔 첫 번째 승리였다.


그는 왜 테이크다운을 시도하지 않았나?


최영광은 김동규 전에 이어 조성원과 만난 'TOP FC 5' 메인이벤트에서도 태클을 거의 치지 않았다. 3라운드 조성원을 흔들어놓기 위해 전략적으로 한 차례 테이크다운을 시도했을 뿐이다. 그라운드 앤 파운드 위주였던 과거의 경기스타일과 크게 달랐다.


"원래 안정적인 경기를 선호했다. 레슬링 싸움을 걸고 테이크다운을 성공시켜 톱포지션에서 상대를 압박하는 것이 내 스타일이었다. 그것이 안전하다고 믿고 있었다"는 최영광은 스탠딩 타격전을 고집한 건 세계무대로 가기 위한 '자체적인 테스트'였다고 밝혔다.


"감독님이 세계로 가려면 타격이 뒷받침돼야 하고, 타격으로 국내정상에 서지 못하면 세계무대에서 최고가 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김동규 전부터 태클을 아예 배제하고 싸우자는 전략을 들고 나갔다"며 "TOP FC 챔피언이 되고 나서야 감독님이 이제부터 그라운드 파운더와 스트라이커를 섞은 완성형 단계로 가자고 했다. 이제 앞으로 타이틀 방어전에서 더 세련된 최영광의 경기스타일을 만나게 될 것이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13년. 교실에서 친구들과 뒹굴던 괴짜 고교생이 한 단체를 대표하는 챔피언이 되는 데 걸린 시간이다. 통산 전적은 10승 7패 1무효. 승리도 있었지만 패배도 많았다. 하지만 벨트를 허리에 두르고 지난날을 떠올리니 환희의 승리보다 뼈아픈 패배가 더 소중했다.


"조성원은 정말 강했다. 1라운드 정타가 들어가 끝내려고 다가갔는데 눈빛이 죽지 않았더라. 예전 같으면 급한 마음에 어떻게든 KO시키려고 서둘렀겠지만, 스스로 진정시켰다. 여러 번의 패배를 통해 내가 배운 것이다. 1라운드 종반에는 내가 하나 걸렸다. 최대 위기였다. 그런데 정신은 살아있었고 잘 대처할 수 있었다. 지난 패배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는 최영광. "우리나라 나이로 서른이다.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UFC 무대에 서기 위해 한 경기 한 경기 사력을 다해 싸워야 한다"는 굳은 각오를 나타냈다. "내가 조금 더 간절했던 것 같다. 조성원은 더 강해질 것이고 성장할 것이다. 내 나이가 된 조성원은 지금의 나보다 더 좋은 선수가 돼있지 않을까"라며 패자를 다독이기도 했다.


최영광이 동갑내기 권아솔에게 말한다


최영광은 자신은 프로파이터지만 한 사람의 마니아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팬의 입장에서 TOP FC에서 가장 보고 싶은 건 한성화와 김동규의 경기다. "둘이 한 번은 싸워야 할 위치인 것 같다. 그 승부가 보고 싶다"며 "경기 승자가 차기 타이틀 도전권을 갖게 되지 않을까"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바라는 드림매치는 따로 있다. 로드FC 페더급 챔피언 최무겸과 두 단체의 합동이벤트에서 맞붙을 수 있길 바란다. 최영광은 "국내 종합격투기 활성화를 위해 팬들이 원하는 경기를 성사시켜야 한다. 윗선의 결심이 필요하다"면서 "최무겸 선수, 한 번 합시다"라는 메시지를 띄웠다.


로드FC와 TOP FC는 배타적인 관계다. 최영광의 바람이 단기간 내에 이뤄지긴 어렵다. 하지만 단체를 대표하는 챔피언으로서 하고 싶은 일도, 하고 싶은 말도 많다. 그래서 동갑내기 권아솔의 발언에 대한 카운터도 공개적으로 날렸다.


로드FC 라이트급 챔피언 권아솔은 얼마 전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TOP FC처럼 초보 선수들이 많이 출전하는 대회는 구경하는 재미가 있을지 몰라도 전체적인 수준과 가치는 떨어진다. 특히 그쪽 선수층은 우리 로드FC의 두꺼운 선수층에 못 미친다. 최영광 등 한두 명 빼고는"이라고 했다.


최영광은 이에 대해 "나를 빼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피릿MC 때부터 활동해온 동갑내기라 챙겨준 것 같다. 권아솔은 오랜 전우다. 아솔아, 고맙다. 하지만 TOP FC 챔피언 자격으로 한 마디 해야겠다. 선수들의 수준은 선수가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팬들이 평가하는 것이다. TOP FC는 양보다 질이다. 선수들의 인지도가 떨어질지 몰라도 실력과 가능성은 뒤지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마지막 도발로 마침표를 찍었다. "체급별로 상위 랭커 한두 명을 뽑아 싸워보자. TOP FC 미들급에는 양동이와 김재영이 있고, 페더급에는 내가 있다. 라이트급에 김도형 등 강자들이 많다. 만약 대표 파이터들이 싸우게 된다면 그쪽 선수들의 실력은 TOP FC의 실력에 못 미친다. 권아솔 등 한두 명 빼고는"이라고 받아쳤다.


이교덕 기자 doc2ky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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