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하 칼럼] '안면 폭격 사건'의 가해자 복귀, 日격투계의 징계란 면죄부인가?

알 수 없는 사용자 / 2016. 3. 6. 23:17

3월 18일 발간된 주간 프로레스 표지, 사진은 '시멘트 사건'의 가해자 요시코


지난 2015년 2월 22일, 일본 프로레슬링계에 발생했던 잔혹한 사건은 열도를 넘어 세계에까지 여파가 확산되고 있었다. 일본 여성 프로레슬링 단체 스타덤(Stardom)에서 일어난 이른바 '안면 폭격 시멘트 사건'은 피해자 야스카와 아쿠토에게 광대뼈, 안와골절, 코뼈골절, 망막 손상 등 막대한 부상을 입혔다.


저항 불가의 상대방 안면에 수십 회의 마운트 펀치를 꽂아 넣은 가해자 요시코에 대한 비난이 폭주하자 단체측은 요시코에게 무기한 출전 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이후 요시코는 기자 회견을 통해 사죄의 뜻을 밝혔으며 은퇴를 불사하는 자숙의 기간을 갖노라고 발표했다.


야스카와는 프로레슬링 무대 복귀를 위해 재활 훈련에 매진, 동년 9월에 복귀전을 치렀으나 결국 시력 회복 불능이라는 의사의 진단 아래 최종적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지난 2015년 12월 23일, 일본 고라쿠엔 홀에서 야스카와는 선수 생활을 끝내는 마지막 10 카운트 종소리를 맞이했다. 2011년 죽어가던 여성 프로레슬링 산업에 신선한 바람을 몰고 왔던 그녀는 그렇게 링 위에서 떠났다.


오는 3월 7일 일본 도쿄 고라쿠엔 홀에서 개최되는 스타덤의 자매 단체격 이벤트 시들링(SEADLINNNG)은 은퇴를 불사한다던 '안면 폭격 시멘트 사건'의 가해자 요시코의 복귀전이 예정되어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일본 격투기 관련 미디어는 요시코라는 '살아있는 힐'의 기사를 연일 쏟아내고 있으며, 단체측 역시 이번 고라쿠엔 홀 대회 흥행에 거는 기대가 크다.


왜 그들은 이토록 화려하게 다시 돌아올 수 있는가?


투기 종목의 스포츠계가 전부 마찬가지로, 흥행을 이끌 스타 선수를 퇴출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들의 경기는 세간의 주목을 받을 수 있으며, 대중들은 문제를 일으킨 선수의 복귀전에 호기심을 갖는다.


일본의 경우엔 특히 그 정도가 심한 편이다. 역도산이 사망한 후 일본 프로레슬링 연맹은 해체 수순을 밟았다. 구UWF는 안토니오 이노키가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팬들에게 항의를 받았다. 1990년대 프라이드(PRIDE)는 다카다 노부히코가 등장하지 않으면 관객이 차지 않는 만년 적자 흥행을 면치 못했고, 링스(RINGS)와 판크라스(PANCRASE)는 각각 마에다 아키라, 후나키 마사카츠가 은퇴한 후 심각한 스폰서 영업 부진에 빠졌다.


이는 일본 격투계가 갖는 상업방식, 시장 규모의 한계에서 기인한다. 일본 격투기 이벤트는 텔레비전 시청률과 관객 동원이라는 1차원적 방법에 의해 돌아간다. 따라서 이들은 미국과는 다른 공통된 특성 하나를 보이는데 그게 바로 선수 개인에 대한 의존성이다. 지상파 텔레비전, 주요 잡지 등 일본만의 한정된 미디어에 의해 큰 영향을 받는 대중들은 스타 선수들을 보기 위해 채널을 돌리고, 회장을 찾는다.


북미 시장은 UFC와 WWE 등 특정 시장을 선두하고 있는, 기본적으로 팬들에게 경기력 자체로 신뢰받고 있는 브랜드에 의해 흥행이 좌지우지 된다는 평을 받는다. 한마디로 PPV 100만개를 파는 UFC 스타가 WSOF로 이적한다고 WSOF의 PPV가 100만개씩 나가는 상황은 일어나기 힘들며, 마찬가지로 WWE 슈퍼스타가 TNA로 이적한다고 TNA가 흥행 대박으로 이어지는 결과는 나오기 어렵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대로 일본의 경우엔 다르다. 실제로 WOWOW 채널은 마에다 아키라라는 이름 하나만 보고, 실체도 없는 링스라는 단체에 중계권을 약속했다. 변변한 자국 파이터 하나 없던 링스는 '격투왕' 마에다 아키라를 믿고 찾아온 관객들에 의해 열띤 흥행을 이어갔다.


미사와 미츠하루, 코바시 켄타, 아키야마 준 등 왕도 레슬링의 스타 프로레슬러들이 설립한 프로레슬링 노아는 단숨에 일본 텔레비전 지상파 중계권을 따냈다. 심지어 일본 텔레비전은 노아 중계를 위해 수십 년간 함께 해오던, 자이언트 바바 사망 이후 단체의 구심점이 사라졌던 전일본 프로레슬링 중계권 계약을 파기했다. 곧 노아는 도쿄돔 진출까지 성공, 2000년대 초중반 업계 넘버원 자리를 차지했다.


사쿠라바 카즈시, 야마모토 '키드' 노리후미 등 주요 스타들을 영입한 히어로즈(HERO'S)는 당시 기준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선수층을 자랑했던 프라이드를 자국내 흥행력에서 능가하고 있었다. 이 같은 구조는 현재 새로 개막한 라이진(RIZIN FF)이 예멜리야넨코 표도르, 사쿠라바 카즈시 등 대중적 인지도를 가진 선수 개인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설명한다.


그리고 오랜 기간 동안 이어진 일본 특유의 선수 개인에 대한 의존성은 역사적 병폐 하나를 가져왔다. 그것이 바로 '명분상의 징계'다.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추성훈-오가와-아오키 징계건


▲추성훈(일본명 아키야마 요시히로) '오일 파문'


2006년 12월 31일 K-1 다이너마이트, 추성훈은 몸이 미끄럽다고 절규하는 사쿠라바 카즈시의 안면에 끊임없이 펀치를 넣었다. 경기가 끝난 직후 추성훈은 공식 기자 회견을 통해 본인은 그 어떠한 것도 몸에 바른 적이 없으며, 다한증이 있기 때문에 몸이 미끄러울 수 있다며, 오일 의혹을 강하게 부정했다.


이후 피해자인 사쿠라바는 끈질긴 진상 조사를 통해 라커룸 VTR을 발견했으며, 이것은 추성훈의 발언이 완전한 거짓임을 입증하는 자료가 됐다. 추성훈은 건조증이 있어서 보습 크림을 발랐다며 최초의 다한증 발언과 정반대의 해명을 던졌으나, 사쿠라바측의 보습 크림을 발랐다는 것치곤 양이 너무나 많았다는 반박에 곧 "룰을 몰랐다"는 최종적인 답을 내놓았다.


훗날 사쿠라바는 격투기 전문지 카미노게를 통해 거듭된 거짓말에 일시적 대인기피 증상을 겪을 정도로 정신적인 피해가 컸음을 시사했으며, 경기 안에서 미끄럽다고 항의하는 사쿠라바의 안면에 펀치를 꽂는 장면들은 곧 추성훈에 대한 일본 대중들의 배신감으로 연결됐다.


대중들의 성화에 당시 K-1 주관사 FEG는 추성훈에게 무기한 출전 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린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상승한 추성훈에 대한 인지도 및 상품성은 FEG의 징계 철회를 만드는 이유가 됐다.


추성훈은 오일 파문 이후 일본 전역의 미디어에 엄청난 주목을 받았으며, 이건 격투계를 넘어선 이슈였다. 그는 FEG에 의해 동년 히어로즈 한국 대회의 메인이벤트와 '대연립'이라 불리던 최대 규모의 연말 이벤트 야렌노카(Yarennoka! Omisoka! 2007) 메인카드에 출전하며 활동을 재개한다.


▲오가와 나오야 '1.4 사변'


1999년 1월 4일, 신일본 프로레슬링 도쿄돔 대회는 수만 명의 인파가 몰렸다. 이 대회에서 일어났던 오가와 나오야와 하시모토 신야의 시멘트 매치는 당대의 격투기, 프로레슬링 팬들에게 큰 충격을 가져다 줬다.


프로레슬링 세계의 암묵적인 룰을 무시한 오가와의 타격에 하시모토는 속수무책으로 당했으며, 하시모토 역시 곧 실전으로 오가와에게 대항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오가와는 프로레슬러이기 전에 엘리트 유도가였고, 슈토(Shooto)의 설립자 사야마 사토루에게 종합격투기 훈련을 오랜 기간 받아왔다. 결국 하시모토는 오가와의 마운트 펀치에 이은 스탬핑 킥, 사커킥으로 코뼈가 골절되는 부상을 입는다.


이후 오가와의 세컨드로 나왔던 무라카미 카즈나리, 제럴드 고르듀 등 UFO 세력과 나카니시 마나부, 이즈카 타카시 등 신일본 프로레슬링 세력 등의 집단 난투극이 벌어지며 도쿄돔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이 사건 이후 당시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현장 감독이던 초슈 리키는 절대 이 사건을 용서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으나, 시멘트 사건을 벌여 단숨에 전국적 지명도를 획득한 오가와의 상품성을 안토니오 이노키가 놓칠 리 없었다. 그는 오가와를 신일본 프로레슬링과 UFO 흥행에 적극적으로 기용했다.


▲아오키 신야 '2009년 다이너마이트'


2009년 12월 31일 개최된 연말 이벤트는 당시 일본의 양대 단체라 불리던 드림(DREAM)과 센고쿠(SENGOKU)의 대항전으로 주목을 받았다. 특히 드림 라이트급 챔피언 아오키 신야와 센고쿠 라이트급 챔피언 히로타 미즈토의 경기는 양대 단체 챔피언간의 대결로 코메인이벤트를 맡았다.


이 경기에서 아오키는 히로타의 팔을 부러뜨린다. 이후 부러진 팔을 붙잡고 쓰러져 있는 히로타의 안면에 중지 손가락을 펴는 제스처를 취한다. 이 사건은 일본을 넘어 북미 전역의 외신들에게도 비판받았다.


드림의 EP를 맡고 있던 사사하라 케이이치는 아오키의 이러한 행위를 엄중하게 다스리겠다고 말했으나, 드림이 차기 에이스로 밀던 아오키에게 '엄중 주의' 이상의 징계는 주어지지 않았다.


자숙의 기간을 거친다던 아오키는 3개월 뒤 스트라이크 포스에 드림 대표 자격으로 출전했고, 이후 한 해 동안 일본에서 3경기를 더 뛰었다. 드림측은 오히려 세간의 집중을 받았던 이 사건을 아오키의 캐릭터 만들기에 활용했다. 사건 이후 개최된 드림의 오프닝 VTR에선 가운데 손가락을 펴고 있는 아오키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격투기 상업 이벤트에서의 정의란 무엇인가


재밌는 건 이들은 사건을 일으킨 직후 대중적 인지도가 수직 상승했으며, 징계가 논의된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동정론이 생겨나기도 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들을 동정하든 하지 않든, 미디어에 의해 집중 조명된 이들은 그 미디어를 접한 대중들이 원하는 히트 상품이 됐다. 퇴출은 없었다. 오히려 그들의 복귀전은 그 어떤 선수들보다 크게 조명 받았다.


흥행 성적을 1차적인 목적으로 두고 있는 상업 단체들의 양심은 어디까지를 한계로 두고 있을까, 그리고 이 속에서 스포츠의 본질은 어디까지를 허락하고 있나. 대중들이 원한다면 그것으로 됐다는 흥행주의와 대중성보다는 본질을 추구한다는 실력주의의 타협점은 어디까지로 둘 수 있을까. 소수의 정통파는 지탄하고, 다수의 대중들은 환영하는 역사의 반복.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가.


좀처럼 풀리지 않는 숙제를 앞에 두고 있는 현재, 어쨌든 시들링의 3.7 고라쿠엔 대회는 진행된다. 피해자는 은퇴하고, 가해자는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돌아온다. 대중들은 요시코를 보기 위해 고라쿠엔 홀을 찾을 것이며, 단체는 흥행 성적을 보며 미소를 띨 것이다.


정윤하 기자 39nuf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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