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슈즈 대신 글러브…파이터 된 발레 꿈나무의 '아빠를 부탁해'

비회원 / 2015. 5. 17. 18:12



발레리나가 될 운명이었을지 모른다. 아버지의 완고한 '반대'가 없었다면….


4살 때 토슈즈를 처음 신은 한 소녀는 예술중학교에 진학하고 싶어 했다. 거기서 발레리나의 꿈을 계속 키워 나가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쳤다. 아버지는 무용을 업으로 삼으면 고생길이 열린다고 믿었다.


꿈을 포기한 소녀는 한동안 방황했다. 목표를 잃고 흔들거렸다. 보다 못한 아버지는 중학교 2학년이 된 딸을 집 근처 체육관으로 데리고 갔다. 운동에 소질 있던 딸이 댄스플로어가 아닌 매트 위에서라도 마음껏 땀 흘리길 바랐다.


여기서 소녀는 운명처럼 주짓수와 킥복싱을 만났다. 치고받고 뒹구는 이 운동의 매력에 푹 빠졌다. 밤 늦도록 수련에 수련을 거듭하던 끝에 실력을 인정받는 킥복서, 주짓떼로가 됐다. 그리고 만 20세, 꿈에 그리던 종합격투기 프로 무대에 섰다.


오는 5월 29일 'TOP FC 7 초심(Return to the Basic)'에 출전하는 여성 파이터 정유진(21,코리안탑팀)의 이야기다. 정유진은 킥복싱(14전 12승 2패), 주짓수(보라띠) 등을 두루 섭렵하고 2013년 5월 코리안탑팀에서 종합격투기 훈련을 시작, 지난해 프로에 데뷔한 유망주다.


정유진은 인터뷰에서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발레를 시작했다. 아버지의 반대가 심해 예중 진학을 포기했다"며 "만약 그때 아버지가 발레를 계속하도록 허락했다면 지금쯤 파이터가 아닌 무용가가 되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정유진은 아버지와 함께 처음으로 격투기 체육관을 찾은 날을 기억한다. "2007년 8월 6일에 아버지와 주짓수·킥복싱·종합격투기를 종합적으로 가르치는 MARC에 등록했다. 아버지는 취미 정도로 생각했지만, 난 그때 '선수까지 보고 시작하겠다'고 공언했었다"고 밝혔다.


아버지가 생각했던 것보다 딸의 의지는 강했다. 정유진은 방과 후 저녁 7시부터 막차가 끊기기 전까지 거친 훈련을 소화했다. 귀가가 늦어지면 아버지는 딸을 데리러 체육관을 찾곤 했다. 운동에만 빠져 사는 딸을 붙잡으려는 아버지의 '야밤 술래잡기'는 4~5년 동안 계속됐다.


정유진은 아버지의 반대 속에서도 운동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결정적인 에피소드를 공개했다. "아버지는 '이러다가 우리 딸, 싸움꾼이 되는 거 아닌가' 걱정했는지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고등학교 2학년 당시 '학급 5등 안에 들면 운동을 허락해주겠다'면서 각서를 쓰자고 제안했다. 5등 안에 절대 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며 웃었다.


이번에도 아버지의 예상은 빗나갔다. 무에타이 신인왕전을 끝으로 6개월 동안 학업에 매진한 결과 2학기 기말고사에서 목표 5등을 달성했다. 정유진은 당당하게 성적표와 각서를 내보이며 "이제 마음껏 운동하게 해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정유진은 "이후에도 아버지는 '각서에 언제까지 운동해도 된다는 기한이 없지 않느냐'면서 반대했다"며 "학교를 졸업한 이후, 아직까지 아버지는 내가 격투기를 그만두길 바란다. 소치올림픽 때 김연아의 연기를 보고 '유진이 발레를 계속 시켰어야 했는데…'라며 후회하는 모습을 봤다"고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정유진은 지난해 종합격투기 데뷔 후 3연패를 기록하고 있다. 모두 해외에서 뛴 원정 경기였다. 종합격투기 경기를 국내에서 갖는 건 처음이다. 게다가 TOP FC 7이 열리는 창원은 외가 친척들이 많은 곳이다. 부모님과 함께 대규모 친척 응원단이 대회장을 찾게 된다.


"부모님이 내 타격 경기를 직접 보시는 건 처음이라서 조금 긴장된다. 더군다나 종합격투기에선 연패 중이라 마음이 무겁다. 주짓수나 킥복싱에선 이렇게 성적이 저조하지 않았다"며 "하지만 아버지가 지켜보니 이길 수 있을 것 같다. 아버지는 인정하지 않겠지만, 나를 파이터 길로 이끈 분이니까"라고 말했다.


프로 첫 승을 노리는 정유진은 이번에야말로 흥분을 가라앉히고 전략적인 경기를 펼치고 싶다고 밝혔다. "상대에게 한 대 맞으면, 꼭 한 대를 돌려줘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라 항상 난타전이 된다. 상대의 스타일을 파악하고 배운 기술을 전략대로 차분히 써보도록 노력하겠다"는 각오를 나타냈다.


정유진은 악바리다. 코리안탑팀의 홍일점으로 산악구보 등 강한 체력을 요구하는 훈련에서도 뒤처지지 않는다. 3연패를 당하고 시름에 잠겨있을 때, 데뷔전에서 패배를 안긴 카일리 커란이 UFC에서 페이지 밴잰트에 패하는 모습을 보고 정신이 번쩍 뜨였다고. 특유의 오기가 발동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 여기서 멈출 순 없다. 아직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하며 뉘우쳤다. 이제 시작인 것 같다. 많은 국내팬들에게 이런 거칠고 화끈한 여성파이터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오는 5월 29일(오후5시) 창원 시티세븐 풀만 앰배서더 호텔 특설 케이지에서 개최되는 TOP FC 7에는 정유진과 함께 '종로 코뿔소' 김두환이 출전한다. 현재 오픈게임을 포함해 12경기의 대진이 전부 완료된 상태다. TOP FC는 순차적으로 매치업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교덕 기자 doc2ky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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